매년 추석명절 차례 상에 오르는 숙주나물의 본래 이름은 녹두나물이었다고 한다.
녹두나물은 쉽게 상해 변하기도 하는데, 유래로는 조선전기 문신 신숙주(1417~1475)의 변절을 빗대어 숙주나물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속설이 있다.
계유정난(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 당시 수양대군인 세조가 단종을 폐위 시키고 왕위를 찬탈하는데 일등공신인 신숙주는 변절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업적은 과히 칭송할 만하다.
그는 20대 초반에 (1438-1439) 국학인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시험에 도전해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을 하였으며 1447년(세종29년)에 문과중시에 합격해 집현전 응교로 승진, 세종의 치세(治世)인 훈민정음 창제에 대단한 기여를 했다.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 등을 두루 구사하였고 한글창제를 비롯해 조선전기 문화를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국조오례의, 해동제국기, 보한채집, 세조실록, 예종실록등을 저술했다.
조선초기 문인들의 시화, 잡록집인 소문쇄록에 따르면 신숙주는 책벌레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명회와 세조와 셋이서 술자리를 자주 가졌는데 집에 각자 돌아간 뒤 한명회는 신숙주가 밤에 무엇을 하는지 하인을 시켜 동향을 살피라고 했다. 신숙주가 술자리 이후에도 집에서 다시 불을 켠 채 책을 읽고 있다니 크게 놀랐다고 한다.
과거의 신숙주는 배신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었지만 오늘날 그의 업적은 찬란한 조선 전기의 문화를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재조명하는 분위기이다.
김진녀 기자